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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대 가수 김광석, 아이콘 서태지, HOT

by 돈오리야 2024. 1. 17.

한국-역대가수
한국 역대가수

한국 대중음악 가요계의 꽃이라고 불리는 시기는 1990년대의 대표적이고, 역사적으로도 길이 남을 가수들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지금 한국음악의 초석이라고 불릴 수 있는 김광석, 서태지와 아이들, HOT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일찍 진 별 김광석

가수 김광석은 1964년 1월 22일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김광석은 중학교 시절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해,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노래패 활동을 하며 음악적인 역량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1984년 명지대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과 꿈을 버리지 못하여 대학연합 동아리에 들어가 선배들과 소극장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습니다. 데뷔는 1985년 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고, 1987년 솔로 가수로 본격적으로 데뷔하였습니다. 데뷔앨범에는 지금까지도 명곡으로 뽑히는 '사랑했지만'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발매와 동시에 엄청난 히트를 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라앉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기다리다' '일어나' '변해가네' 등 수많은 명곡들을 발표하며 한국 대중가요의 대표적인 가수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남녀노소, 나이에 상관없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주로 사랑, 이별, 인생, 그리움 등 삶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는 부분들을 자기만의 목소리와 이야기로 담담하게 풀어나가며 많은 사람들의 여운과, 공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995년 6월 6일, 김광석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어 당시 정말 엄청난 충격과, 화제가 되었습니다. 불과 향년 31세로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김광석의 죽음은 당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지금까지도 그의 죽음은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서정시인이라고 불리던 김광석의 등장으로 한국 대중가요는 큰 영향을 받았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의 음악스타일을 표방한 가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가 죽은 지 30년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여전히 그의 음악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며, 깊은 여운을 가져다줍니다.

대중문화의 아이콘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는 서울에서 1966년 2월 21일에 태어나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전설적인 그룹을 결성하였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기존의 서정적이며, 화려함보다는 수수함 쪽에 가까웠던 한국 가요와 완전히 다른 파격적인 음악과 퍼포먼스로 큰 충격을 안겨주며 새로운 음악산업의 문을 열었습니다. 가요계를 휩쓸었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서태지와 아이들은 '난 알아요' '컴백홈''하여가' '발해를 꿈꾸며' 등 내는 곡마다 엄청난 파급력과 히트를 불러일으키며 대적할 상대가 없을 만큼 독보적인 입지를 가졌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기존의 다소 심심할 수 있던 한국 가요의 틀을 완전히 깨고 차별화된 퍼포먼스와 음악 장르를 전파하였습니다. 또한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등 다양한 아시아권 나라까지 퍼져가며 한국음악 문화 역사에 길이길이 기억될 그룹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의 기존 한국 가요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였다면 그들은 록, 힙합,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이후 나올 가수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입니다. 특히 그들의 노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비판하기도 하며, 단순한 음악이 아닌 시대적 흐름과, 나아가 한국 역사의 정체성까지 이야기하는 그룹이 되며, 당시 청소년들에게는 절대적인 지지와, 인기를 얻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대표곡 중 하나인 '컴백홈'이 발매되고 가출청소년들이 집으로 돌아갔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그들의 파급력은 당시 그 누구보다 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래뿐 아니라 화려한 무대연출력과, 댄스, 특수효과등을 사용하여 귀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눈까지 사로잡아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활동은 4년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았고 1996년에 해체선언을 하게 되며 많은 학생들을 충격과 슬픔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현재 kpop은 세계 각국에서 사랑을 받고, 그 위상을 널리 떨치고 있지만 그들의 시작점에는 언제나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었던 서태지가 있습니다.

아이돌의 시작 HOT

HOT는 1996년 9월 7일 가수 이수만이 설립한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한 5인조 남성그룹입니다. 리더 문희준, 메인보컬 강타, 리드보컬 토니 안, 래퍼 장우혁, 이재원으로 구성된 HOT는 아이돌의 시작을 알린 그룹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그룹이며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로 한국 대중음악계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주로 10대 청소년들을 주로 한 팬덤그룹이 만들어졌고, 소녀팬들은 음악방송, 공연을 따라다니며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보냈습니다. 또한 그들은 시대의 문화로 자리 잡아 HOT가 나오는 방송, 광고, 광고모델상품, 상품등은 정말 불티나게 팔리며 지금까지와는 조금 양상이 다른 아이돌만의 문화와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한때는 부모님, 선생님 말은 안 들어도 HOT오빠들이 말하면 듣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10대 소녀들에게 HOT는 정말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각기 다른 매력과, 능력을 가진 멤버들로 팬덤은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고, 자신의 아이돌을 상징하는 색깔을 정해 모든 곳에서 그들의 존재감을 보일 수 있게 드러내며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고 그 문화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룹명 HOT는 High-five Of Teenagers의 약자로 그룹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아이돌이라는 문화를 자리 잡게 한 시초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HOT는 '전사의 후예' 곡으로 데뷔하여 바로 후속곡인 '캔디'까지 초대박을 치며 아이돌 최초로 최대 음반 판매량 및 방송 3사 가요대상을 받은 전설적인 그룹이 되었습니다. HOT를 시작으로 젝스키스, god, 핑클, 신화, SES가 등장하였고, 점점 한국 대중음악 문화는 기존 솔로나 혼성가수가 주를 이뤘던 거와 반대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아이돌 그룹이 주를 이루는 시장을 만들어냈습니다. 1998년 12월 31일 해체하였지만,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국 대중음악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한국 대중음악 발전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4년 6개월 정도의 활동기간만에 해체의 수순을 밟게 되었고, 기자회견을 할 만큼 당시 엄청난 파장력과 소녀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HOT는 아이돌 역사의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평가받고 있으며, 지금의 KPOP을 이뤄 낸 가장 대표적인 그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를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라고 평가하는 만큼, HOT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그룹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지금까지 90년대 가요계 황금기를 이끌었던 주역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은 이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회자될 한국 대중음악계의 역사입니다.